오늘의 본문
누가복음 15:1-7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나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일까?”, “혹시 내가 사라져도, 이 자리가 그냥 채워지면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 때, 우리는 점점 자신을 작고, 흔하고, 교체 가능한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렇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런 시선은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사람을 숫자와 능력으로 평가합니다. 이 사람이 뭘 해낼 수 있는지, 얼마나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를 기준으로 우리는 사람을 비교하고 줄 세우고, 때로는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보게 될 예수님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 사랑은 조건적이지 않고, 유용성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며,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여기시는지를 깨닫고, 내 옆 사람도 그와 같이 소중한 존재임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한 사람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에서 죄인으로 분류되던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계셨습니다. 이들은 사람들로부터 ‘가치 없는 이들’로 취급받았고, 경건한 사람들과는 함께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예수님이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눈에 매우 부정적으로 비쳤습니다. 그들은 수군거리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2절).”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그러한 기준과 판단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제외하는 선택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존재 자체에 반응하는 사랑, 다시 말해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든, 어떤 평가를 받든 상관없이 그 존재 자체로 존귀하기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아흔아홉 마리 양을 들에 남겨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는 목자의 비유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지키는 것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선택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한 마리 양도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는 한 사람이 그 자체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는 수적으로는 아흔아홉보다 작아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다른 누구로 대신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주저하지 않고 그 한 마리를 찾으러 나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시선은 세상의 시선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존재로만 보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공동체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먼저 따지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생명은 숫자로 셈할 수 없고, 사람은 누구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바꾸거나 대신할 수 없는 존재로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7절)”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회복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기쁨의 이유로 여기십니다.
#나눔 질문
1.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들의 시선은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나요?
2.
비유 안에서 목자가 보여주는 행동(찾으러 감 – 어깨에 메고 옴 – 함께 즐김)은 각각 하나님 사랑의 어떤 측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나요?
3.
세상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예: 조건적, 성과 중심, 관계 유지를 위한 거래적 태도 등) 그런 사랑에 익숙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들었을 때 낯설게 느껴지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예수님의 시선으로 살기
이 예수님의 사랑은 단지 이야기 속 비유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우리에게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랑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요?
먼저, 나 자신에 대한 시선부터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자신을 ‘그저 그런 사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해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분의 자녀이며, 그 자체로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며, 예수님께서 생명까지도 버려두고 기꺼이 찾아 나서실 만큼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 진리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을 닮은 삶의 첫걸음입니다.
다음으로, 타인을 향한 시선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판단합니다. 무엇을 잘하는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공동체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하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사람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 존재 자체로 귀하게 여깁니다. 한 사람을 고유한 생애, 이야기, 존엄을 지닌 존재로 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삶은, 사람을 유용성으로 판단하지 않고, 존재 자체로 존중하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그 사랑을 살아내야 합니다. 청년 공동체는 어떤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팀이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존재하는 지체들이며,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누군가 보이지 않을 때, 한 걸음 물러서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기억하고, 다가가고, 붙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괜찮겠지’, ‘자기 몫은 알아서 하겠지’가 아니라, “그 사람은 하나님께 전부이다”라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공동체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100마리 양 중 하나’로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것을 제쳐두고 기꺼이 찾아 나설 만큼 소중한 ‘한 사람’으로 사랑하십니다. 이제 그 사랑을 닮아 우리도 우리에게 만나게 하신 한 사람을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눔 질문
4. 나는 어떤 기준으로 나의 ‘가치’를 느끼고 있나요?(예: 성과, 역할, 인정, 외모 등)
5. 내가 공동체 안에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처럼 느껴진 적이 있나요? 누군가 나에게 따뜻하게 다가왔던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봅시다.
6. “요즘 우리 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지체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요? “괜찮겠지” 하고 지나친 사람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