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요한복음 11장 23~26절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 담긴 복음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 다섯 번째,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선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마음 문 두드리기
살 날이 딱 하루 밖에 남지 않은 당신,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더 있을 것 같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하루 남은 삶 vs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부활’ vs 마르다가 생각하는 ‘부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11:5)가 병이 들어 그의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합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상태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며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듯, "주님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23절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님이 살던 당시에도 ‘육체의 부활’에 대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었지만 사두개인은 부활을 부정했죠. 그러나 부활을 믿었던 바리새인조차도 마지막 때의 부활을 믿었지, 현재의 삶을 살고있는 사람의 부활을 생각해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마르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에게 부활이란 마지막 때에 다시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지막 때의 부활을 생각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지금의 부활과 생명, 그리고 자신이 곧 부활이요 생명 되심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오라버니 ‘죽음’ 앞에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그 죽음을 거뜬히 이기고도 남는 ‘부활’로 인한 소망이 곧 예수님 자신에게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부활 생명으로!
오늘 본문에서는 25절에서의 ‘죽어도’를 통해 육적인 죽음을, 26절의 ‘죽지 아니하리니’를 통해 영적인 죽음 두 가지 모두 언급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죽음은 인간이 실제로 사망하는 것을, 영적인 죽음은 진리에서 벗어나 예수님과 단절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육적 죽음과 영적 죽음을 다 언급하시면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을까요? 두 죽음 모두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예수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시듯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기적을 통해 부활과 생명이 예수님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인간은 그런 예수님을 저버리고 맙니다. 부활과 생명이 예수님께 있음을 보여준 나사로 사건을 통해 오히려 유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생명을 보여주신 사건으로 예수님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신 겁니다. 아이러니하죠. 그러나 예수님에게 이 일은 결코 예상 못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으로 인하여 한 사람 나사로가 아닌 인류 전체를 살리는 부활과 생명의 통로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2025년을 살고 있는 우리도 또한 부활과 죽음 너머의 영원한 삶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눔 질문
1. ‘육체의 부활과 영적 생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만약 내가 마르다였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어떻게 들렸을까요?
2. 우리가 받은 부활과 생명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 죽기로 이미 작정하신 예수님께서 26절과 같이 “네가 믿느냐” 물어보실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허무하지 않는 인생
이 세상 가장 허무한 것의 끝이 있다면 '죽음'일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죽음이 허무가 아닙니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예수님 덕분에 주를 믿는 우리 또한 그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저 미래의 영원한 삶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목적 없이 열심히 아등바등 살다가 죽으면 같이 끝나는, 허무하게 죽어가는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되게 하는 영광의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눔 질문
3. 인생의 허무함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있다면 그때는 언제였고 그렇게 느낀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나요?
4.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 되심은 나의 삶의 목표와 방향, 살아가는 방법 그 모든 것을 올바로 세우게 합니다. 나의 삶 따로, 예수님의 부활 따로 일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허무한 것에 소망을 두지 않기에 내가 하는 공부나 일, 쉼 모두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안에 의미 있고 가치 있습니다. 지난주의 삶을 돌아보며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의 은혜 아래 사는 삶이란 어떤 태도로 사는 삶일지 구체적으로 나의 삶에 적용하여 나눠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