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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의의나무 청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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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드업 4-27 I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오늘의 본문

갈라디아서 5장 5~15절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우리는 계속해서 올 하반기 동안 “이웃사랑과 나눔”에 대한 말씀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까지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웃사랑’이라는 주제로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이웃사랑’이라는 주제로,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해 함께 빌드업 메세지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 마음 문 두드리기
혹시 지난 한주 직장이나 학교, 가정에서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일이나 사람이 있나요? 무엇이 불편했는지, 왜 그렇게 마음이 안좋았는지 서로 들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합시다.

본문의 배경: 갈라디아 교회의 어려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당시, 초대교회들을 힘들게 했던 것 가운데 한가지는 할례로 대표되는 ‘구원을 위해서 율법들을 지켜야 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다른 초대교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문제로 인해 가장 어려움이 있었던 교회가 바로 갈라디아 교회였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유대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하여, 구약의 율법을 잘 지켜야 구원을 온전히, 그리고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는 이것이 상당히 심각한 논쟁거리였으며, 이로 인해 사도 바울은 복음과 율법에 대해 분명히 가르치기 위해서 갈라디아 교회로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가 오늘날 우리가 읽는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가 경험했던 율법과 구원의 문제는, 실상 그 모습만 다를 뿐 오늘날의 한국 교회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 교회가 경험하였던 문제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 나눔 질문
1.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하여, 전통의 이름으로, 형식과 법조문의 이름으로, 그 밖의 여러 권위의 이름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교회 안에서 강조되고, 강요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그와 같은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더불어 어떻게 다루어가는 것이 지혜롭고 공동체를 위하는 길일지 고민해 봅시다.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

사도 바울은 할례의 강요가 왜 문제가 되는지, 신학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의 목회적으로 갈라디아서 5장을 통해서 설명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애초에 할례와 구약의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불가능함을 분명히 말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할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구약의 다른 모든 율법들도 다 지켜야만 하는데, 이것은 애초에 불가능함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약 유대인 중 누군가가 오직 율법을 통해서, 완벽한 율법 준수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자력으로 구원에 이르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그는 그리스도인이라 부를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이 아닌, 오직 성령을 힘입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더불어 사도바울은 교회 공동체의 목회적으로도 할례의 강요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이들의 심중에 어떤 마음이 있느냐입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할례를 주장한 이들이 보여준 공통적인 행태가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잣대로 하여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을 비판하고, 판단하며,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을 구원의 대열에서 떨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아야만 온전한 ‘믿음’이며, 구원받을만한 ‘믿음’이라고 말하지만, 사도바울은 그와 같은 주장들은 믿음이 아니며, 오히려 실상 그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또 무엇이 없는지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할례와 율법을 무기로 삼아,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만드는 자들이며, 그들의 마음에는 공동체와 지체를 향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온 율법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에서 시작되었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에는 ‘진짜 율법’, 바로 사랑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갈라디아서 5장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진짜 믿음은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교회와 지체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품고, 오직 사랑의 모습으로 표현될 때에만, 그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진짜 ‘믿음’입니다.
#나눔 질문
2. 그리스도께서 묶어주신 우리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해서 제거해야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더불어 서로 권면하고 반드시 지켜내야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할례의 문제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처방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였습니다. 할례를 받았는지 아닌지로 서로 싸울 것도 아니며, 이로 비판하고 또 낙심할 것도 아닙니다. 오직 교회와 공동체와 지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종 노릇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교회로 묶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으로 교회와 공동체와 지체를 섬기면 됩니다. 혹 누군가 율법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는 이가 있다면, 온 율법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또한 교회과 공동체와 지체를 섬기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사도 바울의 경고의 권면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으로 행하지 않고, 서로 종노릇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서로 물고 뜯으며 함께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을 향한 경고의 메세지가 아닙니다. 교회 안의 성도들을 향한 경고의 권면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갈라디아서 5장의 경고의 말씀들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율법을 핑계하여 교회와 공동체를 요동케 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며,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차라리 ‘스스로 베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고 서로 물고 먹은 이들은 결국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교회 안에서 행할 것은 단 한가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 섬기는 것. 오직 이것 뿐입니다.
#나눔 질문
3. 우리 공동체 안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4. 말씀을 조금 더 확장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일상의 삶의 공동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서로 종 노릇하며 섬기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정과 직장과 캠퍼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