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요한복음 8장 12~20절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 담긴 복음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다"(ego eimi)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닙니다. 그 선언 속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어떤 길을 보여 주시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참된 생명의 근원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 마음 문 두드리기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빛’은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나누어 봅시다. (아침 햇살, 야경, 불멍, 별빛 등)
창세기와 초막절의 빛의 의미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배경이 되는 창세기와 초막절의 빛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와 연결합니다. 성경의 첫 구절에서 하나님은 "태초에"(창 1:1) 세상을 창조하셨고, 가장 먼저 "빛이 있으라"(창 1:3)고 말씀하셨습니다. 혼돈과 어둠이 세상을 덮고 있을 때, 빛이 들어왔습니다. 이 빛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생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도 예수님은 창조 때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의 말씀(logos)이시며,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 1:4)고 말합니다.
어둠은 길을 잃게 하지만, 빛은 방향을 제시합니다. 빛이 없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향해 오신 참 빛이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인생이라는 어두운 숲을 지나며 길을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빛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였듯이, 예수님께서도 우리 삶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음으로,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보호 속에 거했음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 동안, 성전의 “여인의 뜰”에서는 커다란 촛불을 밝혀 성전을 환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불기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성전이 환하게 밝아진 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기억하며 기뻐했습니다. 그 빛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초막절이 끝나면 성전의 등불은 꺼지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빛은 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빛입니다. 그 빛은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의 길을 밝혀줍니다. 오늘도 그 빛은 우리를 향해 비추고 있습니다.
#나눔 질문
1.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창세기의 빛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에서 "빛이 있으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새롭게 시작된 순간이 있었나요?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2. 초막절의 빛은 시간이 지나면 꺼졌지만, 예수님의 빛은 영원합니다. 내가 의지했던 것 중에 오래가지 못했던 것들이 있나요? 예수님의 빛을 신뢰하는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빛이신 예수님과 어둠 속에 있는 세상
예수님은 단순히 세상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빛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습니다(요 1:12). 또, 예수님은 새 창조를 시작하는 빛이십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창 1:3) 하셨을 때, 혼돈과 어둠이 사라지고 새로운 질서가 생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혼돈과 죄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예수님의 빛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어둠에서 생명으로 옮기십니다(골 1:13).
빛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불기둥으로 이끄셨듯이,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어둠 속에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한 약속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그분을 믿고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빛을 붙잡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율법을 철저히 지켰지만,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빛 앞에서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전통과 고정관념 속에서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빛이 있었지만,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바리새인들과 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익숙한 방식, 세상의 기준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인도를 놓칠 때가 많습니다. 눈앞에 빛이 있어도 눈을 감아버리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지만, 그 빛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갑니다.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분명한 길을 보여 주십니다.
#나눔 질문
3.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보면서도 자신들의 방식대로만 생각하려 했습니다. 나도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하나님의 방법보다 자신의 방식에만 의존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 결과는 어땠나요?
4. 빛이 있으면 방향을 찾기 쉽지만, 어둠 속에서는 길을 잃기 쉽습니다. 최근 신앙적으로 갈림길에서 고민했던 순간이 있나요? 그때 예수님의 빛을 따라가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빛을 따르라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한 동의나 감탄이 아니라, 그분의 길을 걷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빛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삶의 중심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참된 생명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빛을 거부한다면,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한 채 혼돈 속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를 향해 그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빛을 받아들이고 따를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나를 따르라. 그러면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그 빛 속으로 한 걸음 내딛으십시오. 예수님의 빛 가운데 거하며, 생명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나눔 질문
5.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과 태도가 변하는 것입니다. 나는 요즘 삶에서 예수님의 빛을 따르기 위해 어떤 작은 결단을 하고 있나요? 혹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시도해 보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