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25:22-28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본문의 배경 :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의 비유에는 주인과 종들이 등장합니다. 어느 날 주인은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의 종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종들의 능력에 맞게 달란트(금 1달란트는 약 35킬로그램으로 현 가치로는 50억 7천만원에 해당)를 맡깁니다. 종들에게 각각 청지기적 책임을 부여한 것입니다. 주인이 여행을 간 후, 종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책임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이 종들을 불러 어떻게 책임을 다하였는지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맡은 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두 배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마찬가지로 두 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달랐습니다. 그는 달란트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땅에 고이 묻어두었던 것입니다. 원금 그대로 보관을 잘한 셈이죠. 그러면서 그는 ‘주인이 굳은 사람(24절)’이기에 내가 그리하였다는 말을 합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주인을 함부로 판단한 것은 괘씸하지만 그래도 돈을 잃지는 않았으니 소임은 다 하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주인은 그 종을 나무라며 맡긴 한 달란트를 뺏어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줍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무엇이 과연 문제였을까요?
핑계대지마
종은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주인이 자신에게 달란트를 맡길 때, 원금 그대로를 유지하는 의도로 맡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는 주인이 달란트를 맡긴 결과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떻게 책임을 다하였는지 확인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종은 자신의 주인을 ‘굳은 사람’, 쉽게 말해 ‘엄한 사람’으로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더더욱 달란트를 땅에 묻어 보관할 것이 아니라 엄한 주인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약간의 이득이라도 남길 수 있는 은행에라도 맡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엄한 주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그 혼날 것에 대한 대비를 이리 안일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의 주인에 대한 편견은 핑계였습니다. 종은 주인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어떠한 여행을 마치고 올 지 기대하지 않았고 어떠한 마음으로 돌아와 종인 자신에게 맡긴 바를 확인할 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나쁘다 하였지만, 종인 그가 ‘나쁜 종’이었습니다. 주인이 악한 것이 아니라 26절의 주인의 말처럼 종인 그가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핑계거리에 생각이 갇혀 자신이 할 바를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고 주인 눈치가 보이니 자신의 잘못을 주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까지 맡겨주신 역할을 잘 감당하지 않다가 이후 예수님이 재림하여 우리에게 수행 여부를 확인하실 때에, 핑계를 대며 예수님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부활하시어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와 종들의 수행을 확인하였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다음과 같이 물으실 것입니다.
“자, 내가 너에게 맡긴 바를 사용하여 충실히 책임을 다하였는지 확인해볼까?”
우리는 결코 핑계댈 수 없습니다.
#나눔 질문
1. 비유의 주인은 어떤 마음으로 여행에서 돌아왔을까요? 이와 연결지어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봅시다.
2. 다시오신 예수님이 나에게 청지기적 책임 여부를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혹 지금의 신앙에 게으름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을 함부로 판단하여 핑계삼은 생각은 없습니까?
그거 네 것 아니고 내꺼야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의 또 다른 문제는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주인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달란트가 처음부터 종의 것이었다면 그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든지 잃어버리든지 괜찮습니다. 그러나 종은 지금 자신의 것이 아닌 ‘주인의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는 원래의 주인을 위해 사용되어야 했고 더 쉽게 말하면 주인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주인이 원하는 의도대로 사용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종은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게으름으로 한 달란트를 다루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은 달란트를 사용함에 있어 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성장하며 독립을 배웁니다. 걷는 방법, 옷 입는 법, 양치질, 말하고 쓰기 등을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배웠다면 커가면서는 ‘평생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만은 없구나.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야한다.’라는 것을 깨달아가곤 하죠. 그러면서 점점 내가 무엇을 하고 이루어낸 모든 것들이 ‘나’의 재능, 힘, 능력,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나의 존재가 피조물임을 망각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모태에서 태어났음에도 혼자 뚝하니 아기로부터 존재를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며, ㄱㄴㄷ 한글을 가르쳐 준 이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스스로 득도하듯 ㄱㄴㄷ를 한 번에 다 깨우쳤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계획하셨고 각자를 만드실 때 달란트를 부여해주셨습니다. 각자의 달란트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유에서의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나 두 달란트를 받은 자나, 맡은 달란트를 충실히 사용한 자들에게 똑같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달란트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서로 비교하며 으스대거나 아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달란트는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것을 종들이 받은 것이듯,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은’ 것이며 ‘맡겨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달란트를 ‘잘 사용’하였는지의 여부입니다. ‘잘 사용’했느냐의 기준은 달란트의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며 나의 달란트 사용을 점검해볼 수 있겠습니다.
현재 나의 달란트 사용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가 받은 달란트를 사용하고 있을까?
하나님을 위해 달란트를 사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 때에 예수님은 그 여부를 확인하실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서 주인은 여행을 짧게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는 ‘오랜 후에’(19절)라고 표현합니다.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길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종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종들에게는 돈을 가지고 장사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그 때가 비록 우리가 죽기 전에 온다할지라도, 오늘 당장에도 맡겨진 바를 충실히 감당할 시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시간을 안일하게 여기며 살아갈 수 없는 이유는 달란트를 충실히 잘 사용했는지의 결과를 확인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며 이 시간을 게으르게 보낼 수 없는 이유는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거 네 것 아니고 내꺼야.”
#나눔질문
3. 내가 예수님께 받은 달란트는 무엇일까요? (재능, 능력, 은사 등) 그리고 맡겨진 달란트를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잘 사용하고 있나요?
(봉사, 경청 등의 잘 드러나지 않은 영역부터 눈에 보이는 드러나는 영역까지 달란트의 범위는 다양합니다. 작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결코 작거나 당연하지 않음을 생각해보며 자신이 받은 달란트를 나눠보세요. 답변이 어려울 경우 서로의 달란트를 이야기하는 것도 좋습니다.)
4.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에도 마치 ‘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면 그 때는 언제인가요?
5. 이번 한주, 나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충실히 잘 사용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