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이사야 58:11-12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본문의 배경
이사야 58장 11-12절의 말씀 당시 백성들은 공의를 구하는 금식과 기도를 포함한 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의 예배와 삶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금식을 통해 자신들의 쾌락을 얻거나 불안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 폭력을 외면하며 고통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사58:3-5) 이는 외형적 종교 행위는 열심이지만, 그 내면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 그리고 공의로운 삶의 실천이 부재했던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모순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회는 지도자들의 반역과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행태가 만연했으며, 무거운 세금과 허약한 행정력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폭력과 강압, 노예화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종교적 열심만 있을 뿐, 진정한 신앙과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들에게 질서 의식을 회복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공의로운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형식적 예배 의식이 아닌, 삶 속에서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참된 예배가 행동으로 나타날 때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메마른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하나님,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이사야 58장 11절은 우리가 바른 예배와 삶의 태도를 가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실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메마르고 삶이 불안정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친히 인도하시고 영적으로 만족시키시며 우리의 내면을 굳건하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마치 물이 넉넉한 동산과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처럼, 우리 삶에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생명이 넘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 풍요와 내면의 평안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본문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열심히 금식하고 예배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영혼이 메말라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너희는 금식하되 다툼과 싸움으로 금식하는도다"(사58:4)라고 지적하며, 외형적 의식 속에 감추어진 죄를 회개하고 진정한 예배의 본질,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나아오라고 촉구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종교적 열심을 내어도, 그 안에 진정한 회개와 변화의 의지가 없다면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The Cost of Discipleship)』에서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대조하며, "값싼 은혜란 회개 없는 용서, 훈련 없는 성례전, 고백 없는 사죄이다. 값싼 은혜는 제자도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시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없는 은혜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형식적인 값싼 은혜에 머무르고 있다면, 결코 영혼의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메마른 '껍데기 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물 댄 동산'과 '끊임없는 샘물'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눔질문
1. 삶 속에서 자신의 영혼이 '메마른 곳'이라고 느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언제였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2. 우리의 예배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예배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반성'과 '방향 전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까요?
무너진 데를 보수하고 길을 수축하는 자로서의 부르심, 행동하는 신앙으로
이사야 58장 12절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사명이자 칭호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상황처럼, 우리의 사회와 관계 속에도 폭력과 불공정, 갈등으로 인해 '황폐된 곳'과 '파괴된 기초'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지 개인적인 경건에 머무는 것을 넘어, 이러한 '무너진 데'를 다시 세우고,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수축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거짓된 금식을 하고 있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금식이란 "흉악의 결박을 풀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7)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배의 형식을 넘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제적인 돌봄과 정의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형식적 예배에 안주하며 세속적인 폭력과 불의를 방관하는 것은 신앙인의 본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느헤미야가 황폐해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던 것처럼, 영적, 사회적, 관계적으로 깨어지고 무너진 영역을 회복하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신앙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책임지는 교회이다. 하나님의 일이 세상 안에서의 일이므로, 교회는 세상에 대해서 나름 책임을 지며 미래에 대해서도 책임을 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교회 건물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의 무너진 곳으로 나아가 실천될 때 진정한 보수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눔질문
3. 우리의 신앙이 개인적인 경건을 넘어 실제적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스스로 이러한 행동을 회피하거나 미루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4.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는 칭호가 여러분에게 어떤 도전이나 비전으로 다가오나요? 청년으로서 이러한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생각을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