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고린도전서 9:23-27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청년부의 4분기 주제, “예수님으로 열매 맺는 공동체”의 다섯번째 시간, ‘절제’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절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을 우리 공동체와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배경 :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는 자유, 과연 그럴까?
고린도는 지중해 무역의 요충지로 부와 문화가 넘쳐났지만, 동시에 쾌락과 방종의 도시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코린티아조마이(κορινθιάζομαι)’, 곧 ‘고린도 사람처럼 산다’는 말이 ‘음란하게 살다’는 뜻으로 쓰일 정도였지요.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세상의 가치와 복음적 삶을 혼동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고전 6:12, 10:23)라는 말을 자유의 상징으로 오해하며, 신앙의 자유를 자기 욕망의 정당화로 사용했습니다. 육체의 행위와 영혼의 상태를 분리하던 헬라적 사고의 영향 속에서, 자유는 책임 없는 방종으로 변질되었고, 그 결과 교회 안에는 분쟁과 음행, 결혼 문제, 그리고 신앙적 자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9장에서 바울은 사도로서 마땅히 가질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먹고 마실 권리, 아내를 데리고 다닐 자유, 사도로서 대우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묻습니다.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는 자유, 과연 그것이 참된 자유인가?”
절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진짜 능력
고린도 도시에는 4년에 한 번씩 포세이돈 신을 기리는 ‘이스트미안 축제’가 열렸는데, 달리기·권투·전차경주·음악경연 등 다양한 종목의 경쟁이 펼쳐졌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경기장에서의 열기와 선수들의 치열한 훈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24절)라고 말했을 때, 그 비유는 성도들의 마음에 생생히 와닿았을 것입니다. 그는 이 경기를 예로 들어, 신앙의 길 또한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임을 가르쳤습니다.
운동선수는 상을 얻기 위해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여기서 ‘절제하다’라는 헬라어 엔크라테오마이(ἐγκρατεύομαι)는 “욕망과 힘을 내면으로 향하게 한다”는 뜻으로, 단순히 참고 억누르는 금욕이 아니라 내적 힘의 지배, 곧 자기 통제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성경은 절제를 ‘복음을 위한 자기 다스림”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였다”(23절)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 능력으로 ‘절제’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요? 진정한 자유는 아무 것이나 할 수 있는 방종이 아니라, 복음의 은혜와 상급을 제한없이 누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절제를 통해서 이것을 온전히 경험하였고, 그렇기에 절제는 바울의 삶의 모든 것을 행할 수 있게 한 진정한 자유이자 능력이었습니다.
#나눔질문
1. ‘절제’를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나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왜 그렇게 느끼는지 함께 나누어봅시다.
2. 바울은 신앙을 ‘경주’에 비유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 여정에서 지금은 어떤 구간을 달리고 있다고 느끼나요? 그 과정 속에서 절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예: 출발선, 중간지점, 숨 고르기, 방향 전환, 결승선 등)
절제는 영적인 훈련 과정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유’라는 단어에 익숙합니다. 원하는 것을 하고, 느끼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자유라고 여기는 세상 속에서, 절제는 종종 구속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절제가 진정한 자유를 지켜내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해야 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진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절제는 곧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의 선택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자신을 다스릴 것인가”의 결단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역시 인생의 경기장에서,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바라보며, 절제를 통해 삶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을 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르심과 복음을 향한 자기 조율의 과정입니다. 이처럼 절제는 내 삶을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 삶을 맞추는 성장의 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절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영적 훈련 과정이며, 진짜 자유를 누리게 하는 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복음의 경주자로 부르셨습니다. 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여, 주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온전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나눔질문
3. 최근의 경험 중, 복음을 위해서 절제한 경험이 있는지, 혹 절제를 했어야 했지만 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4. 절제는 “복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 삶의 경주의 영적인 훈련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한주, 내가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절제의 훈련은 무엇이 있을지 함께 나누어봅시다. (예: 말, 시간, 관계,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