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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의의나무 청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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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 빌드업 I 공동체를 살리는 제자도

Contents

오늘의 본문

누가복음 10:1~3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새롭게 시작되는 2026년,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제자도의 모습을 통해서, 올 한해 어떻게 공동체를 섬길 수 있을지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의 배경

어떤 아젠다나 프로젝트를 이루고자 할 때, 우리는 흔히 “언제가 적절한가”, 그리고 “누가 적합한가”를 먼저 고민합니다. 시기가 무르익었는지, 그리고 사람이 준비되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0장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 판단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이 장면은, 안정적이고 안전한 시기가 아니라 가장 위험한 시기에 벌어집니다.
누가복음 9장 9절에 따르면,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목이 베인 이후, 헤롯은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런 일들을 행하는 이는 누구냐” 하며 예수를 찾고 있었습니다. 즉, 지금은 전면에 나설 때가 아니라, 숨어야 할 때처럼 보이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무려 서른다섯 쌍으로 파송하십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본문 설명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파송방식의 위험성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양은 아무런 방어능력도, 공격능력도 없습니다. 이리와 싸운다면, 백번 백패, 그저 먹힐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리 가운데 어린양으로서의 제자들을 보낸다는 것은, 이는 제자들이 충분히 강해졌다는 선언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보내신다는 선언입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가장 위험한 시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을 보내셨을까?”
그 답은 예수님의 목적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추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파송은 전투의 논리가 아니라, 농사의 논리로 설명됩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사역과 제자도의 본질을 밝히십니다. 밀알은 싸우지 않습니다. 그저 땅에 떨어져 죽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죽음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시기를 잘못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시기였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부적합한 인선이 아니라, 밀알로 죽기에는 가장 적합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신 목적은 살아남으라는 것이 아니라, 먹히고 사라지면서 생명을 남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0장의 파송은 실패를 감수한 모험이 아니라, 이미 결과를 알고 계신 예수님의 확신에 찬 결정입니다. 어린 양처럼 죽을 때, 그 죽음이 곧 추수의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눔 질문
1.
우리는 사역과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성공’과 ‘열매’를 어떤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의 제자도는 나에게 ‘더 강해지는 길’입니까, 아니면 ‘기꺼이 사라지는 길’입니까?

적용

누가복음 10장의 제자 파송이 말하는 제자도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죽어야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이 죽음은 특별한 순교의 순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공동체 안에서 반복되는 작고 느린 죽음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리더에게 이 말씀은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리더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자신이 편해질 권리를 내려놓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시간, 나의 에너지를 내려놓을 때, 공동체는 비로소 숨을 쉽니다. 공동체가 살아나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누군가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헌신하고, 더 많이 봉사할 때입니다. 그 사람의 수고와 불편 위에, 다른 지체들이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리더의 죽음이, 공동체의 생명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해야 하고, 때로는 오해와 서운함을 삼킨 채 침묵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밀알로 떨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만 든든히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잘 죽을수록, 공동체는 더욱 잘 살아납니다. 그래서 리더십은 앞에서 끌고 가는 능력이 아니라, 뒤에서 기꺼이 소모되는 용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셨던 그 방식은, 오늘에도 여전히 공동체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나눔 질문
3.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나의 ‘불편함’이 공동체의 ‘유익’이 되고 있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4.
이번 한 주, 리더로서 기꺼이 내려놓아야 할 ‘나의 편안함’은 무엇이며, 그 대신 선택해야할 ‘밀알의 길’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