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푸른의의나무 청년부
🙌

빌드업 6-6 I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방언

오늘의 본문

고전 14:2~5, 26~28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수련회를 다녀오면서 푸른 청년부의 기도의 분량이 채워지고,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다양한 기도의 종류 가운데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방언 기도에 대해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방언 기도는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방언은 초대교회의 역사에도 자주 나타나는 은사로 이에 대한 교훈이 고린도전서 14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말씀의 배경: 잘못 사용된 방언의 은사

고린도 교회는 초대교회 가운데서도 성령의 은사가 매우 풍성하게 나타나는 공동체였습니다. 바울은 편지의 서두에서 그들이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고전 1:7), 다양한 영적 은사들이 그들 가운데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방언의 은사는 고린도 교회 안에서 비교적 자주 나타난 은사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은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그들의 태도였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자신이 받은 은사를 공동체를 섬기기 위한 선물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 능력이나 우월함을 드러내는 수단처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예배 가운데에서도 질서가 무너지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이어지면서 공동체의 덕이 세워지기보다 오히려 혼란이 생기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과 예언의 의미를 다시 설명하며, 방언을 비롯한 다양한 은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권면합니다.

모든 은사는 교회의 덕을 위하여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언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인 기도의 한 형태로서, 개인의 영적 유익을 세우는 귀한 은사라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며(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말합니다(14:4). 이러한 점에서 방언은 개인이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더욱 강조하는 것은 공동체의 유익입니다. 교회의 모임에서는 개인의 영적 체험보다 공동체가 함께 세워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예언이 방언보다 공동체에 더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예언이 더욱 우월한 은사라는 뜻이 아니라) 예언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공동체를 권면하고 세우기 때문입니다.
또한 방언이 공동체 안에서 사용될 때에는 반드시 질서를 따라야 하며, 두세 사람이 차례로 말하고 통역이 있어야 합니다(14:27-28). 이를 통해 초대교회는 공동체 안에서 무분별한 은사의 사용을 방지하며 동시에 질서를 세워갔습니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에는 방언도, 예언도, 통역도 모두 필요한 은사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 모든 은사가 개인의 자랑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 나눔 질문
1.
사람들이 방언을 처음 들었을 때 낯설거나 이상하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바울은 방언이 개인에게는 유익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교회에서는 공동체의 덕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개인의 신앙 경험’과 ‘공동체의 유익’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방언

고린도전서 14장의 가르침은 방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균형 있게 바로잡아 줍니다. 오늘날에도 방언을 처음 접하거나 들었을 때 낯설게 느끼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방언은 결코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방언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 가운데 하나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인 기도의 형태로서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은사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방언은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귀한 은사 가운데 하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또 다른 오해도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은사처럼 여기거나, 방언을 하지 못하면 영성이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은사를 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나누어 주시며, 그 목적은 모두가 함께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방언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으며, 섬김과 가르침, 권면과 같은 다양한 은사를 통해서도 공동체를 세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은사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서로를 섬기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 나눔 질문
3.
교회 안에서 어떤 은사나 신앙 경험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나 비교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바울은 모든 은사가 교회의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세우는 은사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