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행 8:1-8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디아스포라’는 ‘흩어짐’이라는 뜻으로, 고향을 떠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올여름 우리는 익숙한 자리에서 흩어져, 흩어진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고려인과 CIS 이주민, 북향민과 재일조선인을 만납니다. 우리는 이들을 섬기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새로운 복음의 길을 여실 일을 기대합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박해를 피해 흩어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낯선 땅으로 밀려났지만, 그곳에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오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흩어진 사람들을 어떻게 복음의 증인으로 사용하시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박해와 흩어짐
사도행전 전체의 방향을 보여 주는 말씀은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전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장부터 7장까지 복음은 주로 예루살렘 안에서 전해졌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이루는 데 집중했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 밖으로 나아가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뜻밖에도 박해였습니다.
스데반이 죽임당한 후 예루살렘 교회에는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사울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그리스도인들을 끌어내어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성도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유대와 사마리아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이 흩어짐은 교회의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복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려 했던 공격이 오히려 복음을 예루살렘 밖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8장 1절에서 ‘흩어지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씨앗을 여러 곳에 흩뿌리는 모습을 표현할 때에도 사용됩니다. 박해자들의 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쫓겨나고 흩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복음의 씨앗이 새로운 땅에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사탄과 박해자들은 교회를 잔멸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흩어짐을 복음의 파종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교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변화와 낯선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새로운 복음의 길을 여십니다.
#나눔 질문
1.
내 계획과 다르게 삶의 방향이 바뀌었던 때를 떠올려 봅시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원하지 않았던 변화나 어려움이 오히려 새로운 만남과 기회로 이어졌던 경험이 있나요?
사도들만의 선교가 아니었다
사도행전 8장 1절과 4절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 줍니다.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열두 사도만이 아니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흩어진 평범한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복음은 몇 명의 지도자들에게만 맡겨지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공동체 전체가 예수님의 증인이었습니다.
빌립 역시 열두 사도 중에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세워진 일곱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행 6). 그러나 빌립은 사마리아로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했고, 복음이 새로운 민족과 지역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다리를 놓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사도행전 11장에서는 박해로 흩어진 이름 없는 성도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어권 사람들에게까지 예수님을 전합니다(11:19-21). 그 결과 안디옥에 새로운 교회가 세워졌고, 그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는 세계 선교의 중심지가 됩니다.
세계 선교의 길은 사도들만이 열지 않았습니다. 삶의 터전에서 이동하고, 장사하고, 일하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던 평범한 성도들이 자신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의 선교는 처음부터 성령을 받은 모든 성도의 사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습니다. 목회자나 선교사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학교와 직장, 가정과 일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나눔 질문
2.
사도들이 아닌 흩어진 평범한 성도들이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도전을 주나요?
3.
하나님께서 나를 복음의 증인으로 보내신 일상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그곳에서 사람들은 나를 통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상상하게 될까요?
흩어진 사람들이 세우는 다리
사도행전 6장에는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 사이의 갈등이 등장합니다. 히브리파는 주로 아람어를 사용하며 팔레스타인 유대 문화에 가까웠던 사람들이고, 헬라파는 헬라어를 사용하며 헬라어권 문화에 익숙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헬라파 가운데에는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세워진 일곱 사람은 모두 그리스식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헬라파 공동체를 대표하여 세워진 사람들로 이해됩니다. 빌립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헬라어와 이방 문화에 익숙했습니다. 한 문화 안에만 머물지 않고 서로 다른 문화의 경계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때로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계인의 경험은 복음을 전할 때 중요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다른 언어와 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에 자신들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의 문을 먼저 두드릴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러한 문화적 유연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 본토의 종교적·민족적 경계에 강하게 묶여 있던 사람보다, 여러 문화 사이에서 살아온 빌립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화적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약점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경험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로 사용하십니다.
올여름 우리가 만날 고려인과 CIS 이주민, 북향민과 재일조선인도 서로 다른 문화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고려인은 한국의 뿌리를 가지면서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합니다. 재일조선인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문화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북향민은 북한에서의 삶과 남한, 중국 등 제3국에서의 삶을 모두 경험하며,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계인의 삶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과 소외,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경험을 사용하시면, 그들은 누구보다 강력한 복음의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고려인 청년이 복음을 듣고 러시아어권과 중앙아시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북향민 청년이 복음을 듣고 남과 북을 잇는 화해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재일조선인 청년이 복음을 듣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재일 공동체를 연결하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맡기시고, 또 다른 민족과 문화로 보내실 미래의 선교사이며 브릿지 빌더입니다.
우리의 미션브릿지 사역은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와 문화를 따라 다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까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빌립과 헬라파 성도들이 문화의 경계를 넘어 복음의 길을 열었던 것처럼, 우리가 만나는 디아스포라 청년들이 새로운 복음의 길을 열게 될 것을 바라봅시다.
#나눔 질문
4.
어느 공동체에서도 완전히 편하지 않았거나, 두 집단 사이에 서 있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하나님께서 그 경험을 사용하신다면, 나는 어떤 사람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을까요?
5.
누군가를 돕는 사람으로만 바라보다가, 오히려 그 사람에게 배우거나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있나요? 그 경험은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었나요?
6.
고려인과 북향민, 재일조선인을 선교의 대상이자 미래의 선교 동역자로 바라본다면 우리의 태도와 사역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