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고전 15:1-4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제자들의 다음 챕터” 3분기 주제는 “전도”입니다. 전도로 나아가기에 앞서 이 시간에는 복음이 무엇인지 점검해봅시다. 복음의 중심에는 두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
3절에서 바울은 십자가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사건으로 말합니다. 여기서 죄는 몇 가지 잘못된 행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근본에는 하나님을 떠나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려는 인간의 상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자 인간의 삶 전체에도 균열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끼고 숨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비난, 경쟁, 미움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지배하며 폭력과 불의를 만들어냅니다. 우리 자신 안에서도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 그대로 살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몸은 약해지고 병들고 늙어갑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상실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과 세상 전체는 죄와 죽음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셨고, 그로 인해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화해가 가능해졌습니다.
복음의 첫 번째 소식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그로 인해 깨어진 삶의 현실 속에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나눔 질문
1. 지난 한 주를 뒤돌아 보면서, 하나님을 떠나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려고 했을 때가 있었다면 나눠 봅시다.
2. 비난, 경쟁, 미움, 갈등, 반복되는 잘못 가운데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나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지 못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면 서로 나눠봅시다.
부활
그런데 복음은 십자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4절). 왜 부활이 중요할까요?
한 죄수가 죄를 용서받고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막상 감옥 밖으로 나왔는데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런 길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자유는 얻었지만 삶의 방향과 소망이 없다면 결국 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렇게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 있던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통치 아래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현재를 회복하신 것입니다. 나아가 주님은 우리로 부활을 소망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먼저 살아나셨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도 장차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다시 일으키시고 우리의 몸을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고전 15:42–44, 51–53).
바울은 부활의 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썩을 것 → 썩지 않을 것
욕된 것 → 영광스러운 것
약한 것 → 강한 것
육의 몸 → 신령한 몸
여기서 “신령한 몸”은 몸이 사라지고 영혼만 남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새롭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는 못 자국이 있었고, 옆구리에는 창에 찔린 자국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가장 처절한 실패의 흔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배신과 폭력, 죽음이 남긴 흔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에도 그 흔적은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흔적은 더이상 패배와 수치의 흔적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영광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부활은 신비이기 때문에 우리가 장차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살아날지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아프고 수치스러운 것들도 마지막 모습은 아닙니다. 몸의 약함도, 우리가 겪었던 상처도, 지금은 실패처럼 보이는 일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장 아프고 수치스러웠던 흔적들이 부활 안에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약함이 강함으로 바뀌고, 죽을 몸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늙어가다가 결국 사라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몸이 약해지고 죽음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마지막에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점점 죽어가는 삶이 아니라 부활과 영원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나눔 질문
4. 나는 부활을 실제 나의 미래로 믿고 있습니까? 부활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5. 예수님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이 부활 이후에도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나의 상처와 실패를 바라보는 데 어떤 생각을 주나요?
우리가 받은 복음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복음이어야 합니다. 나는 여전히 죄와 실패가 나의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겪고 있는 아픔과 약함이 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내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과 실패가 마지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을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살아가고, 전해야 할 복음입니다.
#나눔 질문
6. 나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적어보고, 왜 그렇게 적었는지 나눠보세요.
(예시. 1) 나에게 복음은 과거에 정말 친한 사이였지만, 이제는 멀어져 버린 친구 같다. 2) 복음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




